
먼저 이 영화가 과연 15세 이상 관람가인지 물어나 볼 일이다. 왕따문화가 체감피부에 와닿지 않는 나에게 이 영화의 소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과연 15세의 청소년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느낌을 갖을까?
오히려 당연한 현상, 아니 오히려 제대로(?) 표현 못했다고 하려나?
영화가 가지는 시놉에 의한 재현의 미학에서 완성된 그것이 주는 심리적 강박이 정확하게 미치는지 안미치는지 나로서도 확신할 순 없지만, 이것 저것 영화를 보다보니 난 솔직히 이런 영화는 청소년 당사자들이 안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학교를 졸업한지 거의 20년이 넘어가는 지금의 내 나이에, 이런 소재는 공상속에 머무는 환각이다.
도무지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요 또래의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이다.
무서운 세상,
우정이 없는 학교,
사랑이 없는 관계,
소외된 자를 보호하는 것이 우스운 것이 되어버린 현실...
그렇다. 요즘 세상은 내가 옳은 일을 하면 그것이 내게 해가 될 수도 있는 사회인 것이다. 아이들의 작은 사회에서 이렇게까지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그 안에 방관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회적 정의와 개인의 양심을 운운하는 것은 솔직히 그 사람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영화 중 김윤진의 내면 심리변화에 따른 표정연기가 압권인데, 편집없이 롱테이크로 촬영된 이 부분에서는 왜 김윤진이 세계적인 배우로 등용되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엄마라는 존재, 아이를 키워보니 사실 아이에게 정이가지 않을 수 없고, 그에 따라 과잉보호란 말에 대해 아이가 없던 때보다 이해가 가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엄마]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아이]를 빼놓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요즘 세상은 내가 옳은 일을 하면 그것이 내게 해가 될 수도 있는 사회인 것이다. 아이들의 작은 사회에서 이렇게까지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그 안에 방관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회적 정의와 개인의 양심을 운운하는 것은 솔직히 그 사람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영화 중 김윤진의 내면 심리변화에 따른 표정연기가 압권인데, 편집없이 롱테이크로 촬영된 이 부분에서는 왜 김윤진이 세계적인 배우로 등용되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엄마라는 존재, 아이를 키워보니 사실 아이에게 정이가지 않을 수 없고, 그에 따라 과잉보호란 말에 대해 아이가 없던 때보다 이해가 가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엄마]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아이]를 빼놓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영화에서의 엄마의 복수는 지극히 공감이 간다.
헌데, 요즘 엄마들은 어떠한가?
이 영화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에 대해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복수의 주인공 김윤진이 아니라 가해자들의 엄마에게 바치는 레퀴엠이라고...
자기 아이 기죽인다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않는 엄마들...
내 아이 내가 키우는데 뭔 말이 많냐는 엄마들...
여기에 사회적 정의와 개인의 양심 들먹이면 난 바보가 되는거다.
내가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
나만큼은 내 아이를 그렇게 키우지 않는 거다.
신해철도 방송에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우습다.
너무도 당연한 것을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 사회에서 뻔뻔하게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너무 우습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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